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 소학생 유괴 살인사건 (문단 편집) == 발견된 시신, 잡히지 않은 범인 == 현장에 출동한 [[일본제국 경찰]]이 이도리의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고 [[부검]]을 실시한 결과 끔찍한 진실이 밝혀졌다. 시신은 심각했는데 목은 등하교시 입고 있었던 [[망토]]에 목이 졸려 있었고 목 부분에는 칼[* 당시 언론이 "소도(小刀)"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단검이나 과도 등 사이즈가 작은 흉기로 보인다.]에 찔린 흉터도 두 곳이 있었다. 머리 부분은 돌에 두어번 찍힌 흔적이 있었다.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상해가 가해진 나머지 정확한 사인을 추정하기도 어려웠다. 그리고 자궁에는 [[강간]]을 당한 흔적이 있었는데 이걸 종합하면 '''전화로 부모를 사칭해 아이를 조퇴시킨 다음 아이가 집에 가는 길에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.''' 당시 언론의 표현대로 괴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.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이 충격적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전라북도청의 경찰부에서[* 지금의 [[지방경찰청]]은 ([[행정안전부]]의 지방 사무소지만 과거 한국도 내무부 치안국 시절에는 경찰은 각 도 산하였다. 이는 현재와는 전혀 다른 직제로서 XX도청 직할의 XX부국이다. [[일본 제국]]의 경찰관들은 [[프랑스 제3공화국]]과 [[독일 제국]]의 [[경찰행정법]]을 본받아 내무성 직할의 경보국(국가경찰) 도쿄 시내의 [[경시청]]에서 근무하는 지방경찰(다만 도쿄는 경시청의 역사성과 수도의 치안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다른 지방처럼 경찰부가 아니라 경시청이었다.) 및 [[도도부현|도부현]]의 민정관청에서 근무하는 지방경찰로 [[인사(직무)|인사]][[인사행정론|체계]]가 분리되어 있었고 [[고등문관시험]]에 합격한 민정문관이 XX군수로 승진한 뒤에 XX경찰서장으로 부임하는 [[순환근무]]도 흔했다. 당연히 일본 본토의 현청 직제를 모방하여 [[조선총독부]]의 13개 도청에서는 [[도지사]]의 지휘를 받는 5개의 부국(경찰부, 내무부, 재무부, 농상부, 광공부)이 설치되어 있었다. 참고로 일제강점기의 [[관료제]]는 현대의 1급~10급 공무원(국민의 충복)이 아니라 중세의 정1품~종9품 문무관리(국왕의 충복)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. ] 지휘본부를 설치한 다음에 전주부 일대를 중심으로 전라북도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범인을 잡기는커녕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. 일본제국 경찰은 [[2월 12일]] 이도리의 사촌오빠인 쇼 치히로(長千宏)[* 한국식 독음은 장천굉. 일본어 독음은 아마 '치히로'일 것이지만 당장 비슷한 시대의 사람인 [[스기하라 지우네]]도 엄연히 로마자로 chiune라고 썼는데도 일본인들이 그의 이름을 '센포'로 읽어서 그렇게 통했으므로 다르게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. 옛날 일본인들의 이름은 신문기사에 읽는 법이 안 나왔으므로 지금 읽는 법을 알 수 없으니 현대에 대충 때려맞춰 읽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. 예를 들어 [[관동대지진]] 직후 수상이 된 山本權兵衛도 야마모토 콘베, 야마모토 곤노효에라는 두 가지 읽는 법이 있고 생전에도 본인이 뭐가 옳다고 밝히지 않아 두 개 다 쓰인다. 그러나 검색 결과 [[http://kakijun.com/c/53435b8f.html|일본 사이트]]에서도 이 이름을 치히로(ちひろ)로 읽는다고 되어 있고 다른 건 없기 때문에 치히로일 가능성이 높다.]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하고 집중적으로 조사했으나 끝내 증거 불충분으로 [[2월 22일]] 석방하면서 사건을 미제로 종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